노을에 잠긴 감곡성당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이 말씀의 내용은
첫 번째가 치유입니다.
두 번 째가 축복입니다.
세 번 째가 회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제의 입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그대로 전달됨을 믿어야 됩니다.
오늘 이 미사 중에 치유가 이 자리에서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축복의 말씀이 나와 내 가족에게 내렸음을 믿습니다.
회개를 통하여 하느님을 첫 자리에 두는 거룩한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세례 받으신 다음에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말씀선포’였습니다.
제자를 먼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먼저 선포하셨습니다.
세례 받은 자의 첫 번째 일은 말씀선포입니다.
대자 만들려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꽃동네 봉사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세례 받은 자가 제일 먼저 할 일은 말씀선포입니다.
사제는 강론 준비를 철저히 해야 됩니다.
좋은 강론, 준비된 강론은 신자들을 하느님께로, 성체께로 인도하며
내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저는 신학생 때 선배신부님들의 이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신부는 미사만 잘 드려주면 돼, 강론은 목사들이 잘하면 되지.”
미사 잘 드리고 강론 잘하면 기가 막힌 사제인데 왜 목사만 강론을 잘해야 될까?
사제만 말씀선포의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세례 받은 모든 백성들은 말씀선포의 의무가 있습니다.
말과 말씀은 분명히 다릅니다.
말씀은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말씀은 세 가지 열매가 맺어지는데 첫 번째가 영적변화입니다.
말씀을 쏘이면, 말씀을 받아들이면 영적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치유가 일어납니다.
세 번째는 삶이 변화되고 나중에는 우주가 변합니다.
첫 번째, 말씀의 열매는 영적변화라고 했습니다.
그 영적변화의 내용은 사람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옮겨갑니다.
모든 생각을 하느님중심으로 합니다.
이제껏 회개는 내가 죄에 떨어졌다고 하는... 자존심 상하는 것이라
징징거렸지만 말씀을 받아들여 영적변화가 일어나면
하느님 중심으로 후회가 아닌 회개를 하게 됩니다.
두 번째 하느님을 첫째자리로 옮기는 영적변화가 일어납니다.
내 첫째자리에 세상이 아니라, 자식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몸뚱아리가 아니라,
하느님으로 옮겨가는 겁니다.
특별히 이 영적변화는 말을 전하는 사람이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같이 일어납니다.
저도 입만 열면 신자들에게 이렇게 살라고 말하면서
나도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같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통해서 열리는 두 번째 열매는 치유라고 그랬습니다.
주님께서는 손 하나 대지 않으시고 말씀만 가지고 치유를 이루셨습니다.
대학교수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지식전달입니다.
피정 때 살아온 모습이 다르고, 학력이 다르고...
90된 노인부터 초등학교 아이까지 앉아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지식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이 아니라 말씀으로 할 때는 상상도 못하는 치유와 구마가 일어납니다.
말씀의 세 번째 열매는 삶을 변화시킵니다.
신앙생활에 적극성을 띠게 됩니다.
‘안 하면 손해 보니까~’ 라는 식으로 했던 기도가
이제는 꿀처럼 달게 느껴지면서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됩니다.
하루 종일 TV 앞에 빠져 있던 그 시간이 헛되고 헛되게 느껴지고
기도하는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올바른 영적예배를 하게 됩니다.
미사 끝나기만을 들어올 때부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미사시간 내내 또 하나의 사제가 되어 제단에만 못 올라 갈 뿐이지
또 다른 제사장이 되어서 그 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죽은 미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미사를 드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변화입니다.
세 번째 삶의 변화는 적극적으로 선교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구원받았다고 확신을 갖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도 구원받았다고 하는 확신이 없는 주제에 어떻게 남을 위해 전교를 합니까?
천주교신자 10명 가운데 8명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부흥회 며칠만 나갔다 와도
‘나 구원 받았네~’
얼마나 뜨겁게 집안사람, 동네사람들 끌어내려고 합니까?
그러나 껍데기만 천주교신자고, 내세울 것이라고는 3대, 4대...
구교신자라는 것 가지고, 한평생 다른 사람 전교 한 번 못하고 죽습니다.
내 기도와, 내 힘과, 내 노력으로 성당에 한 사람도 끌어놓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면 분명히 그건 엄한 심판거리가 될 겁니다.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말씀의 열매는 삶이 변화가 되고, 매사에 적극성을 띠게 됩니다.
기도도 적극적으로 하게 되고, 영적 예배도 적극적으로 하게 되고
선교도 적극적으로, 봉헌도 적극적으로 하게 됩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10년 전이나 헌금도 똑같고, 20년 전이나 교무금도 똑같습니다.
하느님께 내는 것은 늘 찌끄러기, 내기나 하면 다행입니다.
어느 본당이든지 50%도 교무금 안냅니다.
하느님의 것, 떼어 먹는 겁니다.
말씀을 통해서 영적 변화가 오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됩니다.
좋은 강론이 되려면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 가장 영향을 덜 주는 것부터 이야기하면
첫 번째가 선천적으로 끼가 있어야 됩니다.
두 번째가 후천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제들이 서품 받을 때 말씀을 전하는 능력의 씨앗은 주어졌지만
그곳에 물주고, 거름 주고, 꽃피고, 열매 맺게 하는 것은 사제들의 몫입니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자료 모으고, 스크랩하고.....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저절로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내가 한 강론을 다시 들어보고
‘아, 내가 무슨 자가 이 발음이 잘 안 되는 구나!’
수 천 번 발음을 해서 교정했습니다.
명강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 중요한 것은 체험입니다.
선천적인 것, 후천적인 노력, 체험..이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그것은 지식전달입니다.
저는 90년대에 중국선교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5년 동안 조선족을 피정시켰고, 5년 동안은 한족을 피정시켰습니다.
중국말을 잘 못해서 조선족 신학생이든지 조선족 신자를 옆에 앉혀놓고
통역을 시키는데 조선족 자체가 서울말을 다 이해 못합니다.
조선족 말로 남편이라는 말은 ‘나그네’입니다.
내가 열 개 이야기하면 조선족은 여덟 개 밖에 못 알아듣습니다.
그것을 중국말로 번역을 해서 중국 사람들에게 전달을 하려면
나는 분명히 열 개를 이야기 했는데 한족은 다섯 개 밖에 못 알아듣습니다.
과연 내 말이 제대로 전달이 될까?
그런데 놀랍게도 웃어야 될 때 중국 사람들이 웃습니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할 때 손수건 꺼내서 눈물을 닦습니다.
비록 뜻을 다섯 개 밖에 못 알아들었다 하더라도
나머지 다섯 개는 누가 채워줍니까?
성령이십니다.
어줍잖은 말 재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도 말씀의 능력을 가득히 받고 나서야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피정 다닌 지 25년이 넘어갑니다.
다양한 삶, 나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성령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말장난이요, 지식전달이 됩니다.
피정을 하면 할수록 조심스럽고 두렵습니다.
신부님 우리 성당에 오셔서 이런 주제로 피정시켜 주십시오.
그런데 그날 가서 주제는 한 장도 못 넘겨보고 여섯 시간 동안 딴 이야기만 하다 옵니다.
엉뚱한 이야기 했으니까 그 신부님께 얼마나 미안합니까?
“신부님 미안합니다. 신부님이 준비해 달라고 한 주제 열심히
준비했는데 다른 이야기만 하다 갑니다.“
“신부님, 우리 본당사정 누구한테 들으시고 하신 겁니까?
어떻게 우리 성당이랑 꼭 맞는 이야기만 골라서 하십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기도합니다.
‘성령이시여, 제 입술을 가지십시오.’
저는 입만 벌려드립니다.
목소리 큰 것 하나, 제가 가지고 있는 특기입니다.
두 번째 조건은 성서를 반드시 가까이 하고 살아야 됩니다.
<성서를 가까이 하지 않고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새빨간 </SPAN>거짓말쟁이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의 말입니다.
천주교에 냉담자가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성서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겁니다.
성서를 가까이 하면 냉담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늘 옆에다 두고 읽고 쓰고 외웁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할머니가 박사를 데려다가 입교를 시킵니다.
우리 교우들이 죽으면 관에 넣어가지고 가야 될 것이 세 가지입니다.
가슴에는 십자가 고상을 끌어안아야 되고
손에는 묵주를 감고
한평생 보았던 성서책을 관에 넣어가지고 가야 됩니다.
천주교감곡신자들은 미사 때 성서책을 꼭 들고 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의 문패가 천주교교우의 집입니다.
여호와 증인들은 6개월 동안 특수훈련을 받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이 뭐냐!
천주교 문패가 붙어있는 집부터 공격을 해라!
왜냐?
천주교신자들은 성서를 모르기 때문에 넘어가기 쉽다.
얼마나 쪽팔리는 이야기입니까?
말과 말씀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말씀은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있지만 말은 지식으로 끝납니다.
영적변화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그랬지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됩니다.
두 번째, 성서를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사제의 입을 통해서도 예수님께서 얘기신대로
‘오늘 이 말씀이 너희들이 들은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오늘 치유의 말씀이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음을 믿고
축복의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믿고
회개의 말씀이 이 자리, 이 성지에서 이루어졌음을 믿습니다. 아멘
♧ 2010년 1월 24일 -연중 제 3주일(느티나무신부님) 말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