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蓮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비가 오니까 마음이 센티해지십니까?
순례하러 떠나려했다가도 일기에 많이 좌우가 되지요?.
‘멘토’ 라고 하는 단어의 뜻은 영적스승,
‘멘토링’ 이라고 하는 것은 영적지도자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멘토’ 의 원형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스케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동시에
그분의 섬세함이라고 하는 것은 전율을 느낄 정도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인간형의 모습을 세 가지로 구분하시면서
그 세 가지 중에 하나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배움을 주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 까지는 걸어서만 갈 수 있는데 .
그 길에 많은 강도들이 많이 출몰하였습니다.
저도 배낭을 메고 물 하나 들고, 성서에 나오는 대로 예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
30여 킬로를 반은 맨발로 반은 신발을 신고 걸어보았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한데 ‘길이 굉장히 좁고, 한쪽은 절벽이다...이런 곳에서
강도를 만나면 여지없이 목숨을 내놓거나 물건을 빼앗길 수밖에 없겠구나!’
오늘 복음에 예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한 여행자가 강도를
만나서 죽게 되었고, 다 죽어가는 그 사람 곁을 세 사람이 지나갑니다.
한 사람은 유대교의 사제인데 그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민수기 19장 11절이 떠올랐습니다.
‘시체의 몸에 손이 닿은 사람은 7일 동안 부정하다!’
이 사제는 하느님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이웃사랑의 계명보다도
의식적인 요구를 더 따지는 그런 사제였습니다.
이 제사장을 가리켜서 ‘형식주의형의 인간’ 이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성당에 오는 길인데 길에 웬 사람이 복통이 났는지
체했는지, 얼굴이 하얘져가지고 길에서 뒹굴고 있다면
그 사람 데려다가 병원에 입원시키고, 보호자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날 저녁 마지막 미사까지 놓쳤다 해도....
그 분, 그것 때문에 성사 볼 필요가 있느냐!
성사 볼 필요가 없습니다.
성당에서는 지극히 모범적인 신자이지만, 집에서는 빵점짜리 신자가 있습니다.
묵주기도 열심히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 별로 신경 안 씁니다.
옆방에는 풍으로 누워있는 시부모가 계시지만, 하루에 한 번도 잘 들여다보지 않고,
똥 싼 시어머니 옆방에 놔두고 자기 방에서 촛불 켜놓고 아름답게 묵주 돌립니다.
바로 이런 인간이 형식주의입니다..
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을 못 베풀면서 성당에 나와서는
오만 일 다 하고 돌아다니는 것, 다 위선덩어리입니다.
두 번째, 레위인이 지나갑니다.
이 레위인은 ‘안전제일주의형 인간’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에 도적들은 가끔 속임수를 썼습니다.
몸에다가 돼지피를 바르고, 강도 맞은 사람처럼 신음하면서 아픈 척하다가
행인이 접근해오면 벌떡 일어나서 칼을 들이대고 덮치는 강도가 있었습니다.
레위인은 도와주려고 하다가 ‘저 놈이 강도이면 어떡하나~~’
36계 줄행랑을 칩니다.
안전제일 주의 인간은 이기주의를 낳고, 이기주의는 무관심을 낳습니다.
어제 인터넷 뉴스를 보니까 명동 한 복판에서 10대 유학생 10명이
술을 마시고 22살 된 청년이 어깨를 쳤다고 때려죽였어요.
그 옆에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무서운 아이들이네~’ 하면서 지나갔겠지요.
버스에서 소매치기 하는 모습을 보면 ‘나 못 봤어요!’
조는 척하거나 창밖을 내다봐요.
‘당하는 분, 안 되긴 했지만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 괜히 관여 하다가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 써야 되고...보복 당할지도 모르고, 이 세상은
나만 안 당하면 되지...다른 일에 관여할 필요가 없어!’
십몇 년 전에 제가 청주에 근무할 때, 남편 만나러 간 젊은 자매가
행방불명이 되었어요. 서울역 앞 대우빌딩에 남편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남편과 차 한잔 마시고 나가는 것까지 남편이 보았는데 그 다음부터 행방불명이에요.
7개월 만에 만신창이가 되어서 돌아왔어요.
지금도 그 자매는 정신병원에 있어요.
남편을 만나고 서울역 지하도를 건너서 위로 올라왔는데
올라서자마자 갑자기 웬 남자가 귀싸대기를 때리면서
‘너 이년, 니년이 바람나서 도망치면 내가 못 잡을 것 같애?“
“아저씨, 누구예요?”
“뭐, 서방 보고 아저씨?’
머리채를 잡고 봉고차로 끌고 갔대요.
서울역에 그 많은 사람들이 보고, 전경들도 보고, 수백 명이 쳐다보면서도
“사람 살려! 이 사람 내 남편 아니에요...나 지금 납치되고 있는 거예요.”
봉고차에 안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쳤지만....그 자매는 어디로 끌려갔느냐!
창녀촌으로 끌려 가서 7개월 동안 매일같이 손님을 받았대요.
몇 번 죽으려고 했지만 불쌍한 아이들 때문에 죽을 수도 없었대요.
7개월 만에 틈을 타서 도망을 와서 경찰에 신고를 했대요.
그 자매는 아직도 자기의 몸을 더럽힌 그놈도 죽이고 싶지만 그보다
서울역 앞에서 자기를 도와주지 않은 그 인간들이 더 죽이고 싶대요.“
이런 기가 막힌 일들이 살아가다보면 내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도 있지요.
예수님께서 이 무관심의 죄가 얼마나 큰지, 무관심의 죄는
내 이웃에게 최소한의 책임감을 못 느낀다는 겁니다.
‘천당 가든 말든 니 신앙 니가 알아서 해라!’
매사에 ‘안전 위주형’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야기 하신 두 번째 인간입니다.
세 번째가 ‘실천형의 인간, 다른 말로 열매형 인간’입니다.
아마 이 사마리아 사람은 먼 곳을 규칙적으로 방문해서 장사하는 사람이며
앞 뒤 상황을 보면 그는 매우 신용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서를 보면 돈을 못 주고 죽어가는 사람을 데려다 두고
“잘 돌보아주세요.”
정통 유대인이라고 자처하는 사제도 레위인도 도망을 쳤지만 유대인처럼
법을 지키고 살지는 못해도 이 사마리아 사람은 죽어가는 그 사람을 도와주었던 겁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그의 마음에 깃들여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냐!”
유대인들은 속으로는 떫어도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인정했겠지요.
‘이놈아, 너도 가서 그렇게 해라!’
다시 말하면 형식적으로 살지 말고, 안전위주로 살지 말고
무관심하게 살지 말고, 성령께서 네 안에서 말씀하시는 그대로 행동으로 옮겨라!
이 사마리아 사람을 익명의 크리스천이라고 부릅니다.
내 주변에는 성당에 안 다녀도 성당에 다니는 사람보다 더 따뜻하게,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조상들 중에는 세례 받지 못하고 죽었어도, 사마리아 사람처럼
하느님 ‘하’ 자도 모르지만 우리보다 아름답게 살다가 죽은 사람 많습니다.
‘거지들에게 밥 먹이고, 추운 겨울에 잠재우고.......’
그럼 그분들 세례 안 받았다 천국 못 갑니까?
천만에~~
제일 무서운 말이 뭐냐?
광신도들이 메고 다니거나 차에 붙이고 다니는
‘예수천국, 불신 지옥!’
그것을 쳐다보는 불교신자들의 가슴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예수님은 바로 그런 인간들 때문에 싸우다가 돌아가신 분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십계명을 주셨는데 십계명은 두 가지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흠숭과 인간끼리의 상호존중이 골자입니다.
야고버서 2장 17절에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버서 2장 22절에
‘그의 믿음은 행동과 일치했고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의 믿음은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교우여러분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멘토 로서
당신을 닮은 가장 이상적인 세 가지의 모습을 얘기하시면서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
지금 여러분 마음속에 누군가와 화해를 해야 되는데...전전긍긍하면서 일 년, 이년이
지나면서 사셨다면 오늘 미사 끝나고 휴대폰으로라도 전화하세요.
아니면 찾아가서 화해를 하세요.
,
오늘 미사오기 전에 여러분 친척가운데 물질적인 도움을 청했는데
그 절박한 사람을 못 도와주었다면 ’도와주십시오!’
아무리 좋은 피정을 들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반드시 열매를 맺으십시오!
제가 다른 곳에 가서 하루에 7시간씩, 피정 중에 많은 이야기 하지만,
그것 다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열매 맺으십시오.
2010년 오늘 하루는 이 김신부 에게도 여러분에게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날입니다.
즉시 미루지 말고 내가 찾아갈 사람 있으면 찾아 가십시오!
전화 걸어서 위로해 줄 사람 있으면 위로해 주십시오!
혼자 계신 엄마에게 전화한지 오래되었으면 미사 끝나고 바로 전화하십시오!
화해할 사람이 있으면 화해하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멘토’ 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주시는
영적지도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2010. 07. 11 연중 제15주일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