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나를 비우고
우리의 삶 안에 당신 자리를 좀 더 넓히도록 권유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매우 부드럽다. 내 안에 일어나는 긴장과 갈등은 그분한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자리를 내드릴 방법을 찾느라 고민하며 또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 고심하는 나 자신한테서 비롯되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자신을 버리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나를 버리는 첫 단계는 나를 비우는 일과 관계가 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획에서부터 가장 하찮게 여기는 집착 대상까지. 내 안의 모든 것을 비워야 주님께서 진정으로 주관하실 수 있게 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에 대해 바오로사도가 한 말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는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낯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2,6-8)
지금의 나와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나 사이의 간격을 메우려면 자신을 비우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와 나를 주관하시도록 해야 한다. 나는 그분께서 나를 위하여 계획하신 것을 이해하려고 기도 했다.
그분은 필요 이상으로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게 하는 우리네 삶의 우연적 요소보다 당신 메시지의 본질적 요소와 삶을 방식에 관심을 쏟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영성생활에서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고 주변적인 것인지 쉽게 구별해 낼 수 있다. 본질적인 요소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 되기를, 그리고 다른 이들을 더욱 사랑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주변적인 것들은 자신에게 집착하게 한다.
자신을 비우기 위해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불안하게 느껴지거나 자신을 비운다는 것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노력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므로 주님을 향한 사람과 믿음으로 자신을 버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데 하느님의 뜻이 삶 안으로 들어올 때는 늘 예상하던 대로 정면으로 들어오지 않으며 나지막한 속삭임으로 측면에서 들어와 나를 놀라게 할뿐 아니라 이내 자신을 비우도록 한다.